휴전선 밤하늘에 띄워 진 열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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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첫째주 칼럼 제목 : ”휴전선 밤하늘에 띄워진 열풍선”
이번 칼럼은 오래전 기억속에 감사함으로 자리잡고 있는 저의 경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의 간증록 ‘삼일연속 찾아오신 예수님’ 이 책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는 첫번째 에피소드 입니다. 사실 이 실화는, 구체적으로 음미해 보면 기가 막힌 신비한 체험입니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으나 실재하였던 초자연적인 현상이요 사건이었습니다. 데일리투데이 독자 여러분과 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너무 감사하고 기쁜 마음 큽니다. 귀한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1986년 11월 26일 나는 20년 8개월의 나이로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했다. 6주간의 혹독한 훈련을 마친 나는 최전방 휴전선을 지키는 GOP 부대인 5사단 35연대 4대대 15중대 2소대 이등병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남부지역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에 놀라움과 함께 겁이 났다. 특별히 무전차라고 하는 짚차처럼 생긴 작은 트럭에 실려서 자대로 배치 받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연대본부가 있는 곳도 최전방이었는데 그곳에서 내가 근무할 중대본부까지 가기 위해서는 10곳이나 되는 검문초소를 통과해야만 했었다.
가다가 내려서 검문을 받고 또 가다가 내려서 검문을 받고 하기를 거의 2시간 정도를 달렸을까, 앞에 타고 있던 선임하사가 내리라고 했다. 부대에 도착했다고 말을 하는데 내 눈에는 부대같이 생긴 건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1월 중순 영하 20도가 넘는 중부전선 철원평야의 혹독한 날씨와 매서운 바람과 온 천지를 뒤덮은 하얀 눈만 보일 뿐,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굴뚝 같기도 하고 전망대 같기도 하고 바다 가운데 서 있는 등대같이 보이기도 하는 하얀 건물이 뾰족하게 언덕 위에 솟아 있는 것과 북쪽방향에 길게 쳐져 있는 철조망으로 된 목장 울타리 같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를 인솔한 선임하사가 말하기를, 전망대처럼 보이는 저 건물 쪽으로 가면 누군가가 나타나서 안내를 할 것이라며 그쪽으로 가 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다시 그 무전차를 타고 가 버렸다.
길도 안내판도 없는 눈 덮인 언덕을 저벅저벅 무릎까지 빠져 가면서 걸어 올라갔다.
가까이 가 보니 전망대처럼 보이는 하얀 건물 뒤쪽에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고, 그 아래에 콘크리트로 된 벙커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방처럼 보이는 곳도 많고 사무실 같은 곳도 많고 식당도 있고 넓은 공간도 있었다. 그곳은 중대 본부였는데 그곳에서 전입신고를 하고 2주 정도 기본교육을 받은 후 바로 중대본부 앞에 있는 2소대로 배치를 받아 전방 휴전선을 지키는 병사로서 근무하게 되었다.
철책선 근무는 매우 쉬운 듯 보였으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곳이었다. 왜냐하면 일단 일반 부대와는 다르게 실탄과 수류탄을 근무중 항상 장전시킨 채로 근무하기 때문에 긴장감이 일반부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했다. 고폭탄이라고 하는 작은 폭탄을 10개 정도 항상 들고 다니는 소총수도 있었고 기관총수도 200발 들은 탄약통을 들고 근무지로 들어가서 장전을 해 놓고 근무를 해야만 했다.
항상 전투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으나 금방 적응이 되었다. 철책에 투입되기 전이나 철수한 후에는 반드시 총 안에 실탄이 남아 있는지 장전, 발사 테스트를 여러차례 해야만 했는데 가끔 실탄이 발사되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인 압박감과 긴장감이 아주 심했다. 그래서 군기도 매우 강했다.
1987년 당시 한국 군대에선 구타근절 구호가 메아리 치던 시절이었지만, 우리 부대는 구타가 아주 심했었다.
구타근절 구호는 일종의 장식일 뿐 실상은 구타발전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싶을 정도로 많았다.
나도 여러차례 린치를 당했고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쓰고 몇 번씩이나 여러 고참들에게 두들겨 맞은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배당 받은 철책선 초소에 수류탄을 챙겨서 가져가야 하는 것을 전혀 모른 채 나는 근무 초소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갓 배치 받은 이등병인 나로서는 알 길이 없는 일이었다. 그저 내 소총과 탄약만 챙겨서 근무초소로 들어갔는데, 부대가 발칵 뒤집히는 소란이 일어났다. 순찰을 돌던 중대장님에게 우리 조가 근무 섰던 첫 초소가 구비사항 미비로 적발이 됐는데 적발된 내용이 수류탄 분실이었던 것이다.
휴전선 근무는 해가 떨어지는 시간부터 해가 뜨는 시간까지 군인들이 일정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초소를 한 곳당 30분씩 근무하고 다시 이동해서 다음 초소로 넘어가고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첫 번째 투입되는 초소에 필요한 비치물들 즉, 수류탄이나 기관총 또는 크레모아 폭탄 발사장치 등은 그 초소에 첫 번째로 배치되는 조가 준비해서 비치를 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그러므로 내가 처음으로 투입되었던 초소에 수류탄을 비치해야 할 의무는 나와 그리고 함께 배정된 고참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전혀 이런 내용을 주지 받지 못했고 교육받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냥 아무 생각없이 첫 번째 초소로 이동했고 나의 상급자인 고참 병장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가서 근무하다가 다음 초소로 이동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중대장님이 순찰을 돌다가 그 초소에 수류탄이 없는 것을 보고 수류탄을 분실한 것인지 확인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결국 첫 배치 조였던 우리 조가 수류탄을 비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분실은 아닌 것으로 확인이 되었으나 그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상급자였던 박병장과 함께 근무중인 초소로 상황실로부터 인터폰이 울려왔다.
최 고참 상황병인 최병장이 소대 상황실에서 우리 초소 박병장에게 교신을 취해왔다. “여기는 상황실, 178대답하라 이상.” “네, 여기는 178 말씀하십시오 이상.” “야! 박 병장 니 부사수가 양개탁이 맞냐? 네, 그렇습니다.” “야! 그 새끼 완전히 밟아 버려. 아침에 철수할 때 기어서 나오게 만들어!”
“네, 알겠습니다.” 나는 초저녁이었던 그 시간부터 새벽 동 틀 때까지 주먹과 발로 무차별적인 구타를 당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거의 대여섯 시간 동안을 두들겨 맞았다.
자대에 배치 받은 지 불과 1개월이 조금 지났을까 말까 한 시점이었다. 첫 번째 초소 비치물과 관련하여서는 어떤 정보도 교육도 받은 적이 없는 나로서는, 너무도 억울했으나 나의 억울함을 받아 줄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처벌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고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백마고지 바로 남쪽에 위치한 5사단 영역의 철책선 지역은 철원과 맞닿아 있었고 연천, 전곡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겨울에는 매우 추웠다. 북극이나 남극의 온도가 그곳에서 가끔 보이곤 했었다.
아주 추울 때는 영하30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그곳에서 철책선 근무하는 병사들은 가을에 접어들면 벌써부터 이미 방한 조끼와 두꺼운 스키 파카를 야전 잠바 위에 껴입고서
근무했었다.
또한 군화 대신에 방한화를 내피, 외피 모두 끼워서 신었었고, 장갑도 스키장갑을 제공받아 밤새 근무하는 동안에 체온을 유지시켰다. 그런데 당시 나는 이 수류탄 미 배치 사건을 이유로 고참들로부터 질책성 조치를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동절기 모든 방한 복장과 장구를 지급받지 못한 상태로 영하 25도, 30도를 오르내리는 철책선 근무를 서야 하는 것이었다.
그저 얇은 야전 잠바 차림에 일반 군화를 신은 채로 그 혹독한 추위를 밤새 견뎌야만 했었다. 결국 얼굴에 안면 동상이 걸렸고 양쪽 발가락에도 동상을 입게 되었다.
나는 철원평야와 역곡천 계곡이 흐르는 그곳의 혹한을 견디기 위해 밤새 뛰고 팔 굽혀 펴기 운동을 300번씩 하는 등 추위를 견디기 위해 코피를 쏟을 정도로 계속 움직여야만 했었다.
그런데 바로 그럴 때였다. 다음 초소로 이동하면서 근무를 이어갔는데 초소간 이동 중에 무언가 계속 따라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길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떤 커다란 풍선 같은 것이 따뜻한 온기를 나에게 계속 보내 주는 것처럼 내 몸 주변이 따뜻해 지는 것이었다.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분명히 무엇인가 공중에 둥둥 떠 있었고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따뜻한 열기를 보내 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 얇은 야전 잠바를 입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GOP철책선의 긴긴 밤을 감기도 걸리지 않고 이겨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거의 한달 간을 매일 휴전선 경계근무를 섰다.
난로와 같은 온기를 나에게 보내 주는 그것은 대단히 성능이 좋아서 참으로 따뜻했기 때문에 근무 중 내 등 뒤와 목덜미가 아주 따뜻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은 매일 밤마다 나를 따라다녔기 때문에 나중에는 아예 그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
늘 항상 나를 보호해 주고 따뜻하게 감싸 주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존재함으로 그냥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철책선의 밤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신이라는 것이, 하나님이라는 분이 진짜 존재할까? 그분이 저 공중에 떠있는 열풍선을 나에게 보내 주었을까? 그렇다면 왜 나에게 이런 친절과 도움을 주는 걸까? 나를 아는 걸까?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나? 혹시 자신의 모습을 갑자기 귀신처럼 나타내면 어떡하지? 무서울까? 아니면 산신령처럼 자상하게 생긴 할아버지 모습일까? 등등 등. 상상의 나래를 펴며 깊이 생각에 잠기기도 했었다.
구약성경의 출애굽기를 보면 13장21절에서 22절에 이런 말씀이 등장한다.
“주께서 그들 앞에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빛을 주사 밤낮으로 가게 하셨으며 낮에는 구름 기둥을 밤에는 불기둥을 백성 앞에서 치우지 아니하셨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그들의 앞길을 인도했던 불기둥과 구름 기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낮에는 광야의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구름 기둥을 세워서 막아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일으키셔서 추위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해 주셨던 사건이다. 나에게 일어났던 일도 그 규모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겠지만, 맥락은 똑같은 보호하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략 250만 명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였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큰 불기둥이 필요했던 것이고 나는 단 한 사람이므로 적당한 규격의 열풍선 하나를 띄워 주셨던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봄이 되었는데 어느 날, 군종병 박 하사님이 나에게 침례를 받으라고 권면해 왔다. 평소 나에게 계급을 떠나서 다정하게 대해 줬던 고참이라 거절하기가 난감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나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을 했는데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예수님 이라는 분을 정말 한번 알아보고 믿어 볼까? 그러면 뭔가 긍정적인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였다. 이미 공중에 떠 있는 열풍선을 겨울 내내 체험한 후였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관심이 많이 진전된 상태였었다.
박 하사님은 이제 곧 부활절이 다가오니 이번에 반드시 침례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볼 때마다 강력히 권면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주님을 영접하고 새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받게 된 침례식에서 나는 성령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성령을 계속해서 충만하게 받게 됨으로 영적인 시각이 생겨났다.
그 결과 나는 그때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따뜻한 온기로 나를 감싸 줬던 열풍선을 보내 주신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나같은 미개한 인간을 위하여 친히 오시고 밤새 함께 GOP 철책선에서 날을 세워 가며 나를 지켜 주셨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일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감사함과 회개의 눈물이 수시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1년쯤 후에 나는 중대 군종병이 되었다. 신학을 하지 않았지만 최전방의 작은 중대급 규모라 부대내에서 믿음이 좋고 열심이 있는 병사가 선임 군종병의 지명을 받아 사역을 하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렇게 군종병으로서 사역을 할 때 깨달은 사실은, 당시 이등병이 방한복장과 장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철책근무를 선다는 것은 불가한 일이었는데, 어떻게 가장 추운 혹한기 1~2월 한달 동안을 아무도 지적하거나 시정지시를 하지 않은 채 지날 수가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 일은 최전방 GOP부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혹한기에 철야로 철책선을 지키는 병사들은 일단 완벽한 방한복장을 차려 입지 않고 서는 결코 철책선에 설 수가 없었다.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서 자동 점검이 되게 되어 있었고 지적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부대에서 근무하는 장교, 하사관, 사병 할 것 없이 그 누구도 그에 대한 문제점 제시나 이의 또는 시정 조치를 취해 주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그것은 주님의 개입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주님께서 나에게 당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최전방 휴전선의 혹한을 사용하시고자 장비를 지급받지 못하게 하셨고, 누구도 이에 대하여 의문을 갖지 못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예수님이, 성령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종종 묻는다.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 어디 계셨었냐고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고 특별히 우리가 힘들고 지치고 좌절하고 슬퍼할 때 더욱 함께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그 열풍선 체험을 통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주님은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그 고통을 우리와 함께 나누시기를 기뻐하신다.
이것은 내가 나의 인생을 통해서 경험한 많은 실제 상황 속에서도 증명된 사실이다. 독자 여러분의 삶 속에도 이와 같은 체험이 일어나게 되어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하게 되고 끈끈해 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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