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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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5월마지막주칼럼제목: ”가만히있으라”
이번 칼럼은 특별히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관련이 깊은 주제로 나눠보고자 준비를 했습니다. 제가 쓴 간증록 ‘3일 연속 찾아오신 예수님’ 후속편으로 출판준비 중인 ‘황당한 주님의 부르심’ 이라는 제목의 책에 나오는 한 에피소드입니다. 저의 칼럼을 구독해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이번 칼럼이 여러분의 삶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007년 주님께서 가라고 지명하심으로 오게 된 시카고. 그러나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었다. 특별히 신앙적으로 더욱 그랬다. 열심히 전도를 해도 문제가 발생되고, 봉사를 해도 문제가 되고, 경제적으로도 풀리지 않고,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이민 온 지 벌써 4년째가 되었는데도 아무것도 풀리지 않았다.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이민 온 이후 세번째로 만난 교회를 섬기고 있었는데 International Church (다민족교회) 였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설교는 각 나라 말로 통역을 하여 듣고 교제는 모두 함께 모여 나누는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분문제는 여전히 미결된 상태였고 경제적으로도 당연히 어려운 지경이었다. 아이들도 영주권이 없음으로 대학진학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고 나는 나 대로 심신이 다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있는 나에게 전도사의 자격을 부여하면서 사역을 시작하라고 했다. 열심히 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을 도와 사역하고 있을 때에, 함께 사역중인 신학대학 선배이자 영적으로도 매우 깊이가 깊은 여자 전도사님이 계셨는데, 그녀와 나눴던 대화 중에 깨닫게 된 진리에 관한 이야기가 이 칼럼의 내용이다. 그 전도사님은 이름이 진다혜(가명) 였다.
나는 다혜전도사님에게 이런 저런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자고 제안을 드렸으나, 다혜전도사님은 선뜻 응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교회내 어려운 이웃을 돌 볼 것과 교회밖의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들을 위하여 다양한 사역을 시작해 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전도사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양전도사님, 전도사님은 왜 그렇게 무언가를 하려고 하세요?” 그래서 나는 “그러면 무엇이라도 영혼구원을 위한 일이라면 되든 안되든 간에 열심히 해봐야 되지 않나요?” 하고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전도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양전도사님! 무얼 꼭 하려고 너무 애쓰지 마세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괜찮아요. 주님은 양전도사님이 아무것도 안하고 편히 쉴 때 더 기뻐하실 걸요!”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고 수긍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다시 말하기를
“전도사님! 무슨 말씀 이세요? 아니 주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어떻게 아무 일도 안하고 가만히 놀기만 한 답니까? 그럴 수는 없지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사역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에 전도사님은 이렇게 조용히 나에게 말씀하셨다. “양전도사님! 주님은 전도사님 그 존재 자체 만으로도 행복해 하십니다. 전도사님의 존재 그것 하나만으로도 미칠 듯이 행복해 하시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십니다. 주님은 전도사님과 사랑의 교제를 하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 시구요, 전도사님과 많은 사랑의 대화를 매일매일 나누고 싶은데, 전도사님은 힘들게 일만 하려고 하십니다. 양전도사님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그저 가만히 주님께서 하시는 일만 바라보며 주시는 축복 받으면서 그저 의지만 하시면 된답니다. 그리고 당장 인생이 힘들고 어려우면 전도사님의 영혼과 가족의 영혼만을 위해서 기도하고 안식을 취하세요. 편하게 쉬세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안 한다고 결코 주님께서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 기뻐하시고 전도사님께서 안식을 취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세요. “
나는 그저 “그럴까요?” 하고서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다혜전도사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위로와 깨닫게 하심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다혜전도사님이 해 주신 말씀을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그 말씀은 내 가슴속에 살아서 남아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전도사님의 말씀을 생각할 때가 많다.
간혹 열심을 내는 중에도 “진정 누구를 위한 열심인가? 주님을 위함 인가? 아니면 나의 욕심인가?” 들여다볼 때가 많다. 또 내가 너무 나태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나 싶을 때에도 전도사님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주님은 어떻게 생각하 실까? 싫어하 실까? 아니면 그저 내가 편히 쉬는 것을 더 원하 실까?”
대한민국 기독교인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성도님들 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특별히 목사님에 대한 순종과 교회에 대한 열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아주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안식할 줄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쉴 줄을 모른다. 주님은 우리에게 안식하라고 하셨는데 한국 기독교인들은 안식하는 날이 없다. 일요일 하루 겨우 쉴 때가 많은데 그 날도 교회봉사로 오히려 더 바쁘고 힘들다. 그리고는 스스로 세뇌하기를 봉사가 곧 휴식이요 안식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진실은 그렇지 않다. 안식은 실로 진정으로 휴식할 때 느끼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너무 바쁘다. 그래서 어떤 이는 말하기를 너무 바빠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한다. 나는 묻고 싶다.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는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가 아니다.
물론 바쁘게 살아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주님을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사는 것은 사탄이 기뻐하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가 세상에 흠뻑 빠져서 하나님의 존재를 망각한 채로 살다가 죽기를 바란다. 그래서 더 바쁘게 더 정신없는 곳으로 우리를 몰아가기를 원한다. 사역을 하는 목사, 선교사, 장로, 직분자들 모두 마찬가지다. 주님과의 만남의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도록 우리를 바쁘게 만드는 그것은 주님이 아니고 바로 사탄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다. 착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최근에는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도 충분히 없어서 근심이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무엇이 그리 바쁘기에 하나님과 대화할 시간도 없이 산 단 말인가? 주님의 뜻인가? 사탄의 작전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신 말씀의 진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한가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시간이 있어야만 하나님과의 은밀한 만남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평안한 가운데 묵상을 해보라! 그러면 성령 받은 자라면 누구나 주님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대화가 열리게 된다.
나는 한가하고 평안한 안식의 시간에 조용히 주님을 불러보곤 한다.
“주님,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주님 아시지요? 내가 주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주님은 나를 사랑하세요? 하하하” 물론 주님은 내 마음속에 잔잔하나 찐한 감동으로 “그럼, 내가 너를 사랑하기를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백배는 더 사랑한 단다.” 하시면서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시며 만족해 하시는 것만 같은 감동이 오곤 한다.
그렇다. 우리는 너무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판단하고 실행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간혹 그것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될 때도 있다. 혹여 그렇다면 그 일을 향한 우리의 열심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 그 일들은 누구를 위한 사역이며 누구의 영광을 위한 일들인가? 이 시간 가만히 우리의 편견과 습관을 내려놓고 생각해 보길 바란다.
주님은 간혹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안식하기를 바라신다. 그저 주님만으로도 충분히 흡족해 하고 만족해 하며 행복해 하는 우리들을 주님은 기다리신다. 꼭 우리가 무언가 하나님께 바칠 성과물을 들고 오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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